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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수 장편소설 <마은의 가게>(문학과지성사) 이런저런 자리에서 여성이 일상에서 겪는 위협에 관해 들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적잖이 놀라곤 한다. 나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고 겪을 일도 없는 위협인데, 한국의 치안이 타국보다 훌륭하다는 통계만 보고 무시하기에는 사례가 구체적이고 들으면 빡친다. 남자라면 시비 걸리는 상황이 올 때 맞다이까자는 마인드로 달려드는 사람이 많겠지만, 여자가 그렇게 행동하긴 쉽지 않다. 특히 상대방이 자신보다 완력이 센 남자라면. 기자 시절에 경제, 산업, 노동 분야를 취재하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직간접적으로 자영업자의 현실에 관해 많이 주워들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듯이, 자영업자 상당수는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개업한다. 인생은 그렇게 공평하지 않다. 아무리 달려도 평생 비포장도로만 뛰는 .. 2024. 5. 9.
우다영 소설집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문학과지성사) 작가의 전작인 소설집 을 꽤 충격적으로 읽었다. 수록 작품 한 편 한 편을 읽을 때마다 무언가에 홀려 다른 세계를 엿보고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테드 창이 덜 하드하게 따뜻한 SF를 쓰면 이런 느낌이겠다 싶었다.  '신비롭다' 혹은 '환상적이다'라는 수식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단편들이었다. 특히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필력은 한국 작가 중에선 독보적이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집을 사다 놓은 지 꽤 오래됐는데, 소설집과 장편소설 작업을 하느라 뒤늦게 펼쳤다. 내 방을 오갈 때마다 이상하게 자주 눈에 띄어 밀린 숙제를 하듯 읽었다. 시공간과 생의 한계를 초월해 펼쳐내는 환상적인 이야기들... 작가는 이를 통해 우리가 서로를 칼로 무를 베듯 구별할 수 없는 존재라고 역설한다. 어떤 선.. 2024. 5. 8.
앤솔로지 <몸스터 (몸은 몬스터)>(스피리투스) 2001년 초겨울, 나는 대학교에서 논술시험을 치렀다. 오른손에 깁스를 한 채 왼손으로 펜을 쥐고. 오른손잡이인 나는 왼손으로 삐뚤빼뚤 천천히 글씨를 쓰며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내 몸에 붙어있는 내 팔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답답한 일인 줄 몰랐다. 주어진 시험지를 반도 채우지 못하고 나오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몸도 마음대로 못 하는데, 다른 사람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길 바라는 건 과한 욕심이 아닐까?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도 생생할 정도로 인상적이어서, 나는 누군가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이 앤솔로지를 읽으며 오래전 경험을 떠올렸다. 여기에 수록된 다섯 작품에는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을 고민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자기가 원하는 몸을 만.. 2024. 5. 8.
2024년 5월 2주차 추천 앨범 ▶백아 [편지] * 살짝 추천 앨범 ▶현아 [Attitude] ▶블루터틀랜드 [청호춘가] #이주의추천앨범 #추천앨범 #백아 2024. 5. 6.
이석원 산문집 <어떤 섬세함>(위즈덤하우스) 이석원, 참 대단한 작가다.그가 소설가로서 좋은 작가인지는 의문이지만, 에세이스트로서 좋은 작가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음악으로 경지에 오르고, 산문으로도 경지에 오른 사람이 소설까지 잘 쓰면 반칙이지.감상문을 쓰다가 허접해서 지우고 대신 읽다가 좋았던 문장을 발췌해(일부는 적당히 수정해서) 옮긴다-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더 중요하다.-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사는 것 같아서. 그게 착각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해서. 그래서 우리는 늘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며 사는 일이 가능하다.- 왜 어른들이 모든 것에는 다 때가 있느니, 그러니까 젊어서 많은 것들을 경험해 보는 게 좋다느니 하는 지를 알 것 같.. 2024. 5. 4.
월급사실주의 앤솔러지 <인성에 비해 잘 풀린 사람>(문학동네) 일단 제목이 정말 죽인다.최근 몇 년 사이에 읽은 한국 문학 단행본 제목 중에서 이보다 내 눈길을 확 사로잡은 제목은 없었다.월급쟁이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서점 매대에 놓인 이 책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울 테다.제목 같은 사람을 조직에서 만나 뒷목을 잡아 본 경험이 다들 한 번쯤은 있었을 테니 말이다.이 책은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두 번째 앤솔러지다.지난해에 출간된 첫 번째 앤솔러지 가 많은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두 번째 앤솔러지에는 어떤 작가가 참여해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기대가 많았다.첫 번째 앤솔러지는 전반적으로 내용이 무거웠고, 참여 작가도 많아(11명) 책도 무거운 편이었다.그래서 두 번째 앤솔러지는 그보다 조금 가볍게 나오기를 기대했다.다행히 기대한 대로 첫 번째 앤솔러지에서 느껴졌던 비장.. 2024. 5. 4.
심아진 장편소설 <프레너미>(강) 아내에게 이혼 통보를 받은 한 35살 남자가 있다. 아내는 이유를 알려주지 않은 채 남자에게 이혼을 요구하고, 남자는 그런 아내의 뒤를 밟으며 비난할 구실을 찾는다. 이런 가운데 옛 연인과 돌아가신 어머니 등의 모습을 한 여러 환영이 남자를 성가시게 한다. 남자는 그 환영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역추적하면서 자신의 사랑이 어떻게 이별로 끝났는지를 돌아본다. 책을 덮으며 오래전에 경험했던 사랑과 이별을 떠올렸다. 10년에 가까운 오랜 연애가 끝났을 때, 나는 도대체 왜 이별 통보를 받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괴로웠다. 상대방이 든 이유는 누가 들어도 핑계였지만, 나는 진짜 이유를 듣기가 두려워서 더 캐묻지 않았다. 시간이 1년 넘게 흘러 다른 사람 입을 통해 그 이유를 들었을 때, 나는 너무 비참해서 차.. 2024. 5. 3.
정승진 동화집 <늙은 개>(마루비) 첫 소설집과 새 장편소설 작업을 핑계로 읽기를 미루다가 뒤늦게 펼쳤다. 책을 덮을 때 든 기분은 착잡함과 서글픔 사이의 어딘가였다. 어렸을 때 읽었던 에서 수위를 살짝 낮추고 배경을 현재로 옮기면 이런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문득 오래전 어머니께서 헌책방에서 사 온 의 종이 삭은 냄새가 느껴졌다. 이 동화집은 다양한 동물(혹은 인간이 아닌 무언가)의 시선으로 민담, SF 등을 차용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들여다본다. 나는 어렸을 때 쥐가 손톱을 먹으면 나로 변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 때문에, 지금도 손톱을 아무 데나 버리지 않는다.  당연히 말도 안 되는 미신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만약 내 손톱을 먹은 쥐가 나로 변했다고 치자. 나로 변한 쥐는 나를 대신해 온전히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이 복잡한.. 2024. 4. 30.
김호연 장편소설 <나의 돈키호테>(나무옆의자) 김호연 작가는 데뷔작 를 비롯해 모든 장편소설을 따라 읽었을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다. 작가의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자세와 재지 않는 문장에 스며들어 있는 온기를 사랑한다. 엄청나게 유명한 작가가 된 지금이든 덜 유명했던 과거에든, 여전히 나는 작가의 신작을 손꼽아 기다리는 독자다. 이번에도 온라인 서점에서 예약 판매 중인 이 작품을 보고 바로 구매 버튼을 클릭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과거에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인연을 맺었던 소년 소녀들과 가게 주인이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어른이 된 소년 소녀들이 다시 모여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돈키호테를 자처했던 가게 주인을 추적하는 여정을 담고 있다. 작가의 작품답게 당연히 따뜻하고 이야기는 흥미로우며 쉽게 읽히고 희망적이다. 그렇다고 작가의 메가 히트작인 .. 2024.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