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1994 조해진 장편소설 『빛과 멜로디』(문학동네) 5년 전에 읽었던 작가의 장편소설 『단순한 진심』은 지금도 내게 감동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대한민국 사회의 소외된 곳과 그곳에 속한 사람들을 그저 작품 소재로 다루지 않는 사려 깊은 마음이 느껴졌고, 인간을 향한 신뢰와 희망을 잃지 않는 작가의 시선이 따뜻해서 좋았다. 작가는 이번 작품에선 시선을 대한민국 바깥으로 넓힌다. 지금도 분쟁이 끊이지 않는 시리아,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으로. 그리고 이들 국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향하는 영국으로. 소설로 다루는 공간이 광범위해진 만큼 등장인물들의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스케일도 커졌다. 같은 반 아이가 굶을까 봐 돈이 될 것으로 보이는 카메라를 집에서 몰래 가져와 건네는 아이의 간절한 마음이 시작이다. 그 마음이 카메라를 들고 전장을 오가며 끔찍한 현장을 .. 2024. 9. 12. 정유정 장편소설 『영원한 천국』(은행나무) 데이터로 만든 기억과 정신을 온라인 세계로 옮겨 육신 없이 영생하는 세상. 여러 드라마, 영화, 소설 등에 쓰인 매력적인 소재다. 나 역시 「시간을 되돌리면」이라는 단편소설로 다뤘던 소재이기도 하고. 이 작품은 이 같은 SF소재에 작가의 주특기인 스릴러를 엮은 하이브리드다. 솔직히 뻔하고 흔한 소재다. 뻔하고 흔하다는 건 그만큼 매력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제는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있다. 작품을 들여다보자. 생전의 모든 기억과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면서도 육신으로 느낄 수 있었던 모든 감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가상 세계 '롤라'의 등장이 임박하고, '롤라' 행 티켓이 유심 형태로 무작위로 뿌려진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티켓을 찾으려는 자, 거래하려는 자, 빼앗으려는 자.. 2024. 9. 11. 유은지 장편소설 『귀매』(문학동네) 읽으면서 영화 「파묘」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파묘」의 소재는 일본 요괴인 '오니'이고, 이 작품의 소재 역시 요괴의 일종으로 우리에겐 낯선 '귀매'다. 또한 이 작품도 「파묘」처럼 무속 신앙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와 친일파 등을 다루기 때문에 기시감이 많이 들었다. 이 작품은 2002년에 출간된 원작의 개정판이니, 「파묘」가 이 작품을 닮았다고 말하는 게 옳겠다. 이 작품은 우연히(알고 보면 철저한 계획에 따라) 마을 제의 연구를 위해 부산 다대포를 찾았다가 초자연적인 사건에 얽힌 대학생들의 개고생을 그린다. 이 과정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다대포에서 벌어진 비극과 누군가의 거대한 탐욕이 드러나고, 이에 따라 마을에 쌓인 원한이 넘쳐흘러 위험수위에 다다른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영능력과 문화인류학이라는 전.. 2024. 9. 9. 2024년 9월 2주차 추천 앨범 ▶잠 [빛나] ▶이선지 [Eternal] * 살짝 추천 앨범 ▶데이식스 [Band Aid] ▶웨이브 투 어스 [play with earth! 0.03] ▶사람또사람 [어른의 세계] ▶온유 [FLOW] ▶롱타임노쉿 [2151] ▶투 데이 올드 스니커즈 [펭귄 신드롬!] 2024. 9. 8. 정민 장편소설 『아바나 리브레』(리브레) 일단 배경과 설정만으로도 먹고 들어가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한국과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나라였던(참고로 올해 2월에 수교했다) 쿠바다. 북한과 오랜 세월 우호 관계를 맺어왔고, 외교적으로 책임질 일이 없는 사회주의 국가. 그곳에 북한 최고 존엄의 불알친구가 있다.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국정원 요원이 최고 존엄의 불알 친구을 대상으로 한 비밀공작을 진행하겠다는 핑계로 쿠바로 건너가 놀고먹으려고 한다. 무려 1년 동안이나. 작전명은 칵테일 이름과 비슷한 '아바나 리브레'. 끌리지 않는가? 한국 소설의 배경이 대부분 한국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 작품의 배경은 그냥 외국이 아니라 한국인에게 대단히 낯선 쿠바다.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긴다. 맡아보지도 못한 시가.. 2024. 9. 8. 박솔뫼 산문집 『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좋은 일이 일어남』(위즈덤하우스) 작가가 사랑하는 여러 국내외 여러 작가와 작품에 관해 쓴 독서 산문집이다. 제목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 다소 길지만 장바구니에 집어넣도록 강력하게 유혹하는 제목이다. 어떤 책이든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산문집의 주제는 작가가 정말 좋아하는 주제여야 한다. 다른 책은 몰라도 산문집은 그런 주제가 아니면 절대 편안하고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 작가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전화』를 시작으로 다카하시 겐이치로, 하라료 등 본인에게 많은 영향을 준 다양한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즐겁게 풀어놓는다. 여기서 방점은 '즐겁게'에 찍혀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작가가 이 산문집에 인용한 작품을 얼마나 즐겁게 읽었는지 느껴진다. 그래서 이 산문집은 단순한 감상을 넘어 어떤 책은 어떻게 읽.. 2024. 9. 7. 최수진 연작소설 『점거당한 집』(사계절) 소설을 읽는다기보다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실험적인 퍼포먼스를 감상하는 기분이 들었다. 형식만 보면 최근에 읽은 모든 작품 중에서 가장 독특하고 파격적이었다. 소설과 미술의 경계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경계도 없다. 이 책에 실린 단편소설 세 편은 분명히 허구이지만 마냥 허구라고 볼 수가 없다. 십수 년 뒤에 이 땅에서 벌어지는 원전 사고, 사고 이후 고립된 도시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건들, 여기에 절묘하게 엮이는 예술 작품과 작가의 삶. 익숙한 서사 구조를 기대하고 읽으면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현장 기록(물론 허구다)을 나열하는 형태로 전개되다가, 인터뷰(역시 허구다)가 튀어나오는데, 소설보다는 르포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과거와 현재의 역사과 실존하는 예술 작품을 바탕으로 .. 2024. 9. 7. 김애란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문학동네) 이 작품은 김애란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자 무려 13년 만에 내놓는 새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 역시 작가의 첫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처럼 10대 청소년을 등장인물로 내세운 성장소설이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등장인물들의 선생님이 제안한 게임으로, 자신에 관한 다섯 가지 정보를 말하면서 거짓말 하나를 끼워 넣는 게 규칙이다. 등장인물들은 거짓말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의심하고 때로는 이해하면서 점점 성숙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말과 글이라는 게 그렇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말과 글에는 발화하거나 쓰는 사람이 묻어난다. 감추려 애쓰면 드러나고, 드러내려고 애를 쓰면 감춰진다. 서로의 거짓말이 점점 진실에 가까워지는 모습과 등장인물들의 심리 변화를 그리는 작가의 필치가 간결하면서.. 2024. 9. 3. 차무진 장편소설 『나와 판달마루와 돌고래』(생각학교) 차 작가가 쓴 『여우의 계절』은 올해 들어 읽은 모든 장편소설 중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기억에 남는 진중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 지구를 멸망시키러 온 외계인과 딱히 지구를 지킬 마음은 없는데 지키게 된 소년의 어색한 브로맨스를 다룬다. 해양 오염, 펜데믹, 가족 문제 등 묵직한 소재가 브로맨스와 엮이니 묵직함은 줄어들고 유쾌함이 더해진다. 작가 이름을 가리고 이 작품을 읽는다면 『여우의 계절』을 과 『인더백』을 쓴 작가라고 상상하기 쉽지 않을 테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외계인이다. '새우탕 큰사발'에 환장하는 외계인이라니. 앉은 자리에서 '새우탕' 서너 개를 까는 외계인을 본 일이 있는가. 어처구니없긴 한데, 그걸 보는 나도 침을 질질 흘리다가 자정 넘어 '새우탕'에 뜨거.. 2024. 9. 3. 이전 1 ··· 11 12 13 14 15 16 17 ··· 22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