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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산호 장편소설 <오늘도 조이풀하게!>(책이라는신화) 나는 2000년대 후반 맥스 브룩스의 장편소설 에서 작가의 이름을 처음 봤다. 좀비 아포칼립스 마니아여서 관련 영화와 드라마를 섭렵했는데, 작가가 변역한 는 내가 좀비물에 빠져든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후 디스토피아를 그린 장편소설 에서도 작가의 이름을 역자로 봤다. 그 이름을 역자가 아닌 소설가로 다시 본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도 화사한 표지를 가진 청소년 소설의 저자로 말이다. 다문화가정 차별을 비롯해 한부모 가정, 학원 폭력, 성소수자, 권력과 갑을 관계, 작은 사회 등 표지는 화사해도 다루는 주제가 꽤 무겁다. 이런 문제가 학교뿐만 아니라 학교 바깥에서도 벌어지는 사회 문제이기 때문에 마냥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소설로 읽히진 않는다. 곳곳에 반전과 복선이 깔려 있어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2024. 4. 28.
2024년 4월 5주차 추천 앨범 ▶셀린셀리셀리느 [시간의 문제] * 살짝 추천 앨범  ▶김윤아 [관능소설] ▶스트릿건즈 [Rockabilly Time] ▶백현선 [Longing] ▶다정 [Unlearn] ▶아녹 [Be Free] 2024. 4. 28.
정대건 장편소설 <급류>(민음사) 사다 놓은 지 꽤 됐는데, 이상하게 손에 잡히지 않아서 읽기를 미뤘던 작품이다. 책을 덮은 후에는 늦게 읽은 걸 후회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어질 인연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지독하면서도 섬세하게 보여주는 러브스토리다. 읽는 내내 사랑이란 과연 무엇이고, 무엇이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를 끌리게 하며, 시간이 어떻게 사랑을 성숙하게 변화시키는지를 곱씹게 만든다.  내용과 결이 다르지만, 최진영 작가의 중편소설  속 커플이 페이지 위에 종종 겹쳐서(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마지막은 보다 훨씬 희망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전개와 훌륭한 가독성(작품 제목처럼 빠르게 페이지가 넘어간다!)이 매력적이다. 누군가를 구하고자 망설임 .. 2024. 4. 28.
김하율 장편소설 <어쩌다 노산>(은행나무) 저출산을 우려하는 뉴스가 매년 늘어나고 있는데, 사실 이 문제는 기혼자와 미혼자를 나눠 판단해야 한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혼인 대비 출산 비율은 1.3명이다. 2023년 합계 출산율 0.72명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많다. 통계로 확인할 수 있듯이 기혼자는 여전히 아이를 낳으려는 경향이 크다. 다만 만혼 비율이 매년 높아지다 보니 과거보다 난임 부부와 노산이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작품은 그중 노산에 관해 풀어낸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40대 중반의 나이에 계획하지 않았던 둘째 아이를 갖게 된 작가의 경험담을 그린다. 주인공 이름이 대놓고 작가 본명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자전적인 소설이다. 늦게 결혼해 난임 전문 병원에 다니며 어렵게 첫째를 가졌는.. 2024. 4. 25.
차무진 산문집 <어떤, 클래식>(공출판사) 내가 클래식에 관해 아는 수준은 소박하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베토벤 교향곡 9번, 파헬벨의 카논, 비발디의 사계 등 남들이 다 아는 정도를 알 뿐이다. 그런 나도 한때 꽤 즐겨듣던 클래식이 있는데, 바로 헨델이 오라토리오 '메시아'다. '메시아'를 찾아 듣게 된 계기는 남들이 보기엔 어처구니없겠지만 영화  때문이다. 은 내가 지금까지 과장을 보태면 200번은 넘게 본 최애 영화인데, 그중에서 가장 명장면은 후반부의 총격 신이다. 주인공 두 명을 죽이려고 성당에 처들어온 악당이 성모 마리아상을 총으로 쏴서 부술 때, 절망하는 두 주인공의 클로즈업된 표정 위로 비장한 음악이 흐른다. 신시사이저가 연주하는 처연한 멜로디의 정체를 알아보니 '메시아'의 서곡 '신포니아'였다. 신이 필요한데 신을 찾을 수 .. 2024. 4. 25.
2024년 4월 4주차 추천 앨범 ▶신현필&고희안 [Dear Mozart] ▶더 폴스 [Anomalies in the oddity space] * 살짝 추천 앨범 ▶이성지 [자화상] 2024. 4. 21.
김보영 연작소설 <종의 기원담>(아작) "걸작이다..." 뒤늦게 이 작품을 읽고 든 생각이다. 문목하 작가의 장편소설 이후 오랜만에 그런 생각을 하게 한 한국 SF다. 이 작품은 지구를 지배하는 존재가 로봇인 세상을 배경으로 살아있다는 건 과연 무엇인가를 철학한다. 작품 속에서 로봇은 당연히 자신을 생물이라고 여기고,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극단적으로 오염된 환경이 로봇에겐 최적의 환경이며, 산소와 유기물질은 로봇에게 위협이 되는 오염원이다. 지금 우리가 생존 문제라고 여기는 게 과연 다른 종에게도 문제일까? 작품은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로봇의 시선과 심리를 집요하게 쫓으며 자아와 생존을 고민한다. 지금까지 인간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세계를 모조리 뒤집어서 낯선 세상을 보여주는데, 그 세상이 낯설지 않아서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감탄했다. 로봇.. 2024. 4. 17.
이도형 장편소설 <국회의원 이방원>(북레시피) 한국 역사상 유일한 역성혁명을 주도한 혁명가, 어린 나이에 과거에 급제한 문신 출신 관료, 형제는 물론 처가와 사돈까지 도륙 낸 냉혈한, 아들이 성군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기반을 닦은 명군. 조선 태종 이방원이 오랫동안 꾸준히 다양한 콘텐츠로 다뤄진다는 건 그만큼 그가 흥미롭고 입체적인 인물이라는 방증일 테다. 만약 이방원이 대한민국에 부활해 정치인으로 활동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 작품은 그런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야기의 가지를 다양하게 뻗어나간다. 작가가 오랫동안 정치부에서 일했던 일간지 기자 출신인 만큼 디테일이 좋다. 다양한 취재 경험이 없었다면 쓸 수 없었을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드라마 같은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지면 매력적일 작품이다. 2024. 4. 16.
김나현 소설집 <래빗 인 더 홀>(자음과모음) 이 소설집 속 등장인물은 대부분 일하는 사람들이고 위태로우며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 이렇게 말하니 현실을 핍진하게 그린 노동소설을 모아 놓은 소설집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일하는 사람의 일상을 그리되, 그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진 않는다. 환상을 현실과 뒤섞어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상황을 수시로 연출하는데, 그런 연출이 현실을 다각도로 바라보게 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어쩔 땐 지독하게 핍진한데, 어쩔 땐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황당하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 놓인 노동자가 비현실적인 상황에 던져지면 소설과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이런 방식으로도 묘사할 수 있다는 게 신선했다. 2024.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