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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추천72

심재천 장편소설 <젠틀맨>(한겨레출판) 조직폭력배 말단 조직원이 우연한 계기로 명문대 학생으로 신분을 세탁하는 과정 묘사에 개연성이 부족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홍콩 누아르를 방불케 하는 뒷골목과 폭력 묘사, 아슬아슬한 심리 묘사가 부족한 개연성을 덮는다. 어딘가 조폭답지 않은 섬세함을 지닌 주인공의 모습이 매력적이고 또 애잔해서 이야기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여기에 예상하지 못한 후반부의 반전도 책을 덮기 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읽는 내내 눈앞에 영상이 그려졌다. 드라마보다는 영화로 만들어지면 무척 개성적인 작품이 완성되지 않을까 싶다. 거두절미하고 잘 읽히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여기서부터 주의! 작품과 관련 없는 썰이 훨씬 길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무도 의미를 부여하진 않지만, 2011년은 한국소설 시장에서 꽤.. 2022. 5. 2.
이서수 장편소설 <헬프 미 시스터>(은행나무) 나는 2017년 3월부터 2019년 4월까지 고용노동부 출입 기자로 일했다. 당시 내가 기사로 비중 있게 다룬 이슈 중 하나가 플랫폼 노동이었다. 플랫폼 노동은 일거리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근로계약을 바탕에 둔 노동보다 자유롭다. 플랫폼을 운영하는 업체와 고용 관계를 맺지 않아 법적 지위가 불안정하지만, 일할 시간이나 장소를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코로나 펜데믹 이후 비대면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플랫폼 노동자의 규모도 커졌다. 문제는 한국 사회에 장점은 사라지고 단점만 남은 플랫폼 노동이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플랫폼 노동자가 플랫폼 운영 기업 소속 직원처럼 일하면서, 근로 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이유로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이 작품은 열심히.. 2022. 4. 10.
김유담 소설집 <돌보는 마음>(민음사) 이 소설집은 남들을 돌보지만 정작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여성의 일상을 담은 단편 10편을 모았다. 베이비시터를 구하느라 애를 먹는 워킹맘, 가족에게 헌신했지만 누구의 돌봄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는 노인 등 다양한 연령대를 가진 여성의 시선을 통해 한쪽에 일방적으로 부과되는 돌봄 노동이 과연 옳은지를 묻는다. 작가는 어떤 맥락에서 돌봄 노동이 여성에게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지를 여러 사람의 시각으로 세밀하게 묘사한다. 아울러 작가는 같은 여성이어도 사안을 바라보는 온도 차가 세대별로 다르고, 사는 지역에 따라 들리는 목소리도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며 논의의 영역을 다각도로 넓힌다. 읽는 내내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마치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피가 튀고 살벌한 이야기가 아닌데도 .. 2022. 3. 31.
최유안 장편소설 <백 오피스>(민음사) 직장을 배경으로 다룬 밀도 높은 장편소설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유지하는 구성 때문에 마치 스릴러 드라마 한 시즌을 감상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작품은 행사 기획, 호텔, 대기업에서 근무하는 여성 직장인 셋의 시점으로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직장은 단순히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돈을 버는 공간이 아니다.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고, 그 안에서 마주치는 동료 직원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온전히 익숙해질 수 없다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은 그런 직장의 속성을 잘 보여주면서 노동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해 현장감을 높인다. 특히 이 작품은 호텔에서 고객을 대면하는 프런트 오피스 뒤에서 마케팅, 객실 예약, 행사 개최 등을.. 2022.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