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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추천35

고호 장편소설 <노비종친회>(델피노) 근엄한 단어인 '종친회'에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 '노비'라니. 오로지 제목 하나에 끌려 집어 든 작품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서 읽고 후회하지 않았다. 한국 소설에선 드문 따뜻하고 유쾌한 코미디물이었다.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희성인 헌 씨들이 모여 종친회를 만들고 뿌리를 찾는 이야기'다. 주인공을 비롯해 이 작품에 등장하는 헌 씨들은 소싯적부터 설움을 많이 받아왔다. '현' 씨로 오해받는 일은 기본이고, 조상을 알 수 없어 노비 집안 출신이라는 험담까지 들어왔다. 주인공은 종친회가 나름 돈이 된다는 말을 듣고 곳곳에 흩어진 헌 씨들을 모은다. 그렇게 모인 헌 씨는 몇 안 되지만 출신은 입양아, 탈북자, 주부, 전직 조폭 출신 횟집 사장, 정치인, 교수 등 다양하다. 도무지 공통점이라고는 .. 2022. 10. 7.
차무진 소설집 <아폴론 저축은행>(요다) 내 경험상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등장인물을 극한 상황에 몰아넣는 것이다. 극한 상황에 놓인 등장인물은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에서 등장인물은 종종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멋대로 움직이는데, 그럴 때는 그 뒤를 쫓아가는 것만으로도 꽤 흥미로운 결과물이 나온다. 등장인물이 맞닥뜨릴 수 있는 최고의 극한 상황은 어떤 상황일까. 정답은 정해져 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상황보다 극한인 상황이 또 있겠는가. 이 소설집에 실린 여덟 단편은 문학의 영원한 화두인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설화, 도시괴담, 역사, 고전과 엮어 다채롭게 변주한다. 가족물인 줄 알았는데 심령물로 반전하고, 사극인 줄 알았는데 SF가 끼어들더니, 동화의 한 장면이 고어물로 돌변한다. .. 2022. 10. 7.
송경화 장편소설 <민트 돔 아래에서>(한겨레출판) 이 작품은 작가의 데뷔작인 장편소설 의 후속작이다. 옴니버스 형식이었던 데뷔작과 달리,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결된 장편소설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만큼 이야기를 다루는 깊이도 데뷔작보다 깊어졌다. 작가는 인사청문회, 법안 심사, 국정감사, 예산 심사, 당 대표선거, 지방선거, 대선까지 정치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취재 현장을 두루 다루며 주인공의 성장 과정을 따라간다. 대한민국의 언론사 정치부 기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싶다면 이 작품을 정독하면 된다. 이념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기자의 모습이 잘 담겨 있다. 나도 이 작품을 읽은 뒤에야 현직에 있을 때 몰랐던 정치부 기자의 일상에 관해 자세히 알았다. 작품 곳곳에 반전이 지뢰처럼 박혀 있어 느닷없이 읽는 재미를 준다. 현직에 있을 때 "정.. 2022. 10. 6.
정은우 장편소설 <국자전>(문학동네) 제목과 표지로 이 작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예상해보자. '국자'라는 단어에 전통적 서사물을 의미하는 '전'(傳)이 붙어있다. 아마도 '국자'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 주인공이고, 적절한 풍자를 곁들였을 테다. 조리기구 국자와 같은 주인공의 이름, 표지에 실린 젓가락과 접시 이미지를 보니 음식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오른손에 당당히 궐련을 든 여성의 실루엣으로 짐작하건대, '전'으로 불리는 전통적 서사물과 거리가 있는 듯하다. 내 예상대로 모두 들어맞았다. 그래서 실망했느냐고 물어보면 Nope! 안티히어로물(이견이 있겠지만 히어로물은 절대 아니라고 본다)에 따뜻한 가족 서사가 결합하면 어떤 케미가 일어나는지 직접 확인해보시라. 이 작품은 내 예상보다 훨씬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 2022. 10.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