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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설66

김유담 장편소설 <커튼콜은 사양할게요>(창비) 취업 준비 과정이란 게 언제 어디서 내릴지 모른 채 2호선 순환열차를 타고 뱅뱅 도는 일과 비슷하다. 괜찮은 일자리는 적고, 그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은 많으니, 전공과 적성을 살리는 취업은 언감생심이다. 꿈과 이상만 좇다간 밥을 굶기 십상이니, 거지꼴을 면하려면 적당히 현실과 타협해야 한다. 여기서 비극이 시작된다. 회사라는 조직은 직원에게서 월급 이상을 빼먹으려고 달려드는데, 직원은 일에서 밥벌이 외엔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니 말이다. 취업 빙하기인데도 매년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이 점점 높아지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10여 년 동안 몇몇 직장을 경험하고 깨달은 사실은, 직종과 규모에 상관없이 직원이라는 존재는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부품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과연 대한민국에 직원의.. 2023. 2. 13.
안윤 장편소설 <남겨진 이름들>(문학동네) 작가의 이름을 가리고 읽으면 한국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배경은 중앙아시아 지역인 키르기스스탄이고 등장인물은 현지인이다. 이국적인 풍경과 정취가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어진다.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고, 이를 다루는 문장이 섬세하고 우아하다.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는데,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낯설어 신선했다. 이런 작품을 쓴 작가가 젊은 작가이고, 심지어 이 작품이 작가의 첫 장편이라니. 많이 놀랐다. 이 작품은 키르기스스탄에서 어학연수를 했던 한국인 '윤'이 현지 하숙집 주인의 부고를 전해 듣고, 그로부터 수양딸의 유품인 공책을 전달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후 펼쳐지는 이야기는 '윤'이 공책을 한국어로 번역한 내용의 연속인데, 따로 '윤'의 코멘트가 더해지지 않아 읽다 보면 공책의 주인이.. 2023. 2. 7.
김원우 장편소설 <크리스마스 인터내셔널>(아작) 우선 작품의 설정부터 살펴보자. 느닷없이 광화문 광장에 우주선이 불시착한다. 자몽을 닮은 외계인이 우주선에서 나와 한국어로 구성된 알아들을 수 없는 말 한마디를 남긴 후 침묵한다. 군이 광장을 통제하는 가운데, 우주선과 외계인을 연구하기 위해 여러 분야 전문가가 모여 머리를 맞대지만, 딱히 소득은 없다. 그러던 중 자몽 전문가인 전직 아이돌 걸그룹 멤버, 물리학자 출신 신부, 허당인 천체물리학자 교수가 광장에 전문가랍시고 모이고 여기에 유명 북튜버 소녀, 어린 시절에 과학자를 꿈꿨던 공무원이 끼어든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전혀 예상되지 않는 골때리는 설정 아닌가? 우주선이 불시착했든 말든 대한민국 국민의 일상은 평온하고, 외계인과 지구인의 충돌도 없다. 소소한 인물들이 외계인이나 우주선을 다룬 SF에.. 2023. 1. 30.
김경순 장편소설 <장미총을 쏴라>(은행나무) 추리소설 작가가 예술 작품을 닮은 오래된 총을 둘러싼 살인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이 이 작품의 큰 줄기다. 이야기는 총기 전문 잡지 인턴기자가 사장과 차장을 사살하는 데에서 시작한다. 여기에 정체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는 인터넷 카페, 과거에 근무했던 직원의 의문사, 의문사와 관련 있는 외부인, 잡지사 직원들의 수상한 행보가 가지를 뻗어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구조가 복잡하고 예상치 못한 반전이 매력적이었다. 이야기가 끝이 보이는데도, 어떻게 끝날지 예상이 되지 않아 흥미로웠다. 예상이 모두 처참하게 빗나가 당황스럽기도 했다.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이 마치 어려운 퍼즐을 맞추는 듯해 퍼즐의 모양이 어떻게 완성될지 읽는 내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작품 초반에 패를 까고 시.. 2023.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