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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르포르타주 『먼저 온 미래』(동아시아) MLB파크, 네이트판, 보배드림, 펨코, 더쿠, 클리앙, 일베 등... 나는 평소에 여러 온라인 게시판을 돌아다니며 게시물을 살핀다. 평소에 대놓고 밝힐 수 없는 속내와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곳이어서 이를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종종 들어가서 확인하는 온라인 게시판 중에 디씨인사이드 문학 갤러리, 문예 갤러리가 있다. 시인이나 소설가를 꿈꾸는 이용자가 주로 모이는 몇 안 되는 커뮤니티인데, 온갖 근거 없는 추측과 피해의식을 드러내는 게시물이 난무해 흥미롭다. 이곳에서 최근 들어 자주 눈에 띄는 흥미로운 유형의 게시물이 있다. 챗GPT로 자신의 글을 평가받고 등단 가능성을 점치는 내용을 담은 게시물인데, 그 반응이 꽤 진지하다. 자신의 창작물이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인공지능에 묻는 세상이라니. 심지.. 2025. 6. 27.
앤설로지 『내가 이런 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문학동네) 월급사실주의의 세 번째 동인지다. 첫 번째, 두 번째 동인지가 그랬듯이 이번에 참여한 작가 모두 새 얼굴이다. 첫 번째 동인지는 분량과 내용이 다소 무거워 한 번에 읽기 버거웠던 반면, 두 번째 동인지는 다소 가벼워지고 읽는 재미도 쏠쏠하게 진화했다. 세 번째 동인지는 두 번째 동인지보다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재미만 놓고 보면 지금까지 나온 월급사실주의의 동인지 중 최고다. 참여 작가 역시 빵빵하다.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여럿 목격했다. 온라인 게임의 화폐나 아이템을 현금으로 환전해 생계를 유지하는 게이머를 통해 청년 실업 문제마저 도둑맞는 현실을 꼬집고(쌀먹:키보드 농사꾼), 정치적 올바름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해외의 근로 현장을 들여다보며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올바른 크리스마스). 직업이.. 2025. 6. 24.
클레어 키건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다산책방) 책을 살 때 일부러 베스트셀러를 피하는 편이다. 사더라도 책장에 꽂아두기만 하고 읽지 않는 일이 많다. 남들 다 읽는 책을 굳이 나까지 찾아서 읽을 필요는 없다는 꼬인 심리 때문이다. 그러면서 내 책은 베스트셀러로 등극하길 바라니 그 심보가 참으로 고약하다. 그 심보 때문에 뒤늦게 이 작품을 펼쳤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80년대 아일랜드의 한 소도시에서 아내와 다섯 딸을 데리고 석탄을 팔며 살아가는 30대 남성이다. 주인공은 성탄절을 앞두고 한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진실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평온했던 마음에 균열이 생긴다. 사실 이게 이야기의 전부다. 얇은 책인데도 서사가 내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잔잔해서 지루했다. 몇 페이지 남지 않았는데도 잔잔하기 그지없어서 "이게 뭐.. 2025. 6. 23.
2025년 6월 4주차 추천 앨범 ▶지올팍 [A BLOODSUCKER] ▶강다니엘 [Glow to Haze] ▶프렐류드, 예결 [양류가] * 살짝 추천 앨범 ▶아일릿 [bomb] ▶김일두 [가까스로] ▶아녹 [Love Bouquet] ▶정현봉 [JANUS] ▶데어이즈더리버 [1997] 2025. 6. 22.
정명섭 장편소설 『암행』(텍스티) 거두절미하고 재미있는 페이지터너다. 이제 막 결혼한 아내와 가족을 모두 잃은 조선의 엘리트 선비인 주인공. 과거에 급제해 암행어사로 임명됐지만, 이대로 암행을 떠나면 이야기가 진행되겠는가.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인생의 3대 불행 중 하나가 '초년 출세'라지 않던가. 주인공은 가장 행복한 날에 살인 누명을 쓰고 죽음보다 더 한 갑갑한 처지에 놓인다. 여기서 끝나면 소설이 아니지. 죽음의 문턱에서 주인공은 기연(을 가장한 필연)을 통해 신비로운 힘을 얻는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지 않은가. 어둠 속에서 헤매야만 하는 주인공은 자신이 얻은 힘으로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복수에 한 발짝 다가선다. 『몽테크리스토 백작』 이후 복수극은 다 거기서 거기라지만, 그만.. 2025. 6. 22.
허남훈 장편소설 『밤의 학교』(북레시피) 요즘에는 어떤지 몰라도 내 어린 시절에는 학교와 관련한 괴담이 참 많았다. 밤 12시가 되면 이순신 장군 동상이 칼을 휘두르고 세종대왕 동상은 책을 던진다느니, 유관순 열사의 사진을 뒤집어서 보면 끔찍하게 변한다느니, 책 읽는 어린이 동상이 실제 어린이 시체로 만들어졌다느니... 국민학교 3학년 때 살았던 단칸방 근처의 중학교에 귀신이 나온다는 괴담이 있었는데, 그 옆 공터에서 공사를 하다가 오래 묵은 인골이 발견돼 동네가 뒤숭숭해지기도 했었다. 학교란 공간은 은근히 '백룸'을 닮았다. 낮의 학교는 밝고 시끌벅적한 공간인데, 밤의 학교는 몹시 을씨년스러우니 말이다. 이 작품은 밤의 학교 특유의 분위기에 타임슬립 요소를 가미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세 학생의 모험을 다룬다. 장편소설이라는 타이틀만 붙어있지.. 2025. 6. 21.
김금희 장편소설 『대온실 수리 보고서』(창비) 내용은 다르지만, 룰루 밀러의 논픽션 산문집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소설로 읽는 기분이 들었다. 개인의 괴로운 과거가 방대한 시간에 걸친 누군가의 과거, 그리고 실제 역사와 엮여서 다시 개인으로 연결돼 돌아오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고 감동적이다. 주인공은 창경궁 대온실의 보수공사 백서 작성을 위해 건축사무소에 계약직으로 채용된 여성이다. 공교롭게도 대온실과 가까운 곳에 주인공이 학창 시절에 머물렀던 하숙집이 있는데, 그 하숙집은 주인공에게 지금까지 아픔으로 기억되는 공간이다. 백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과거와 일제강점기의 유산인 대온실과 시대의 아픔이 촘촘하게 얽히고, 업무 때문에 다시 그 공간과 엮이면서 세월에 묻어뒀던 기억과 감정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숨겨졌던 아픈 역사가 .. 2025. 6. 20.
김지연 소설집 『조금 망한 사랑』(문학동네) 표제작에서 소설집의 제목을 따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집은 따로 지은 제목을 달고 있어서 신선했다. 『조금 망한 사랑』보다는 『조금 망한 인생』이라는 제목이 더 낫지 않았을까. 뒤늦게 다시 펼쳐 끝까지 읽고 난 뒤 떠오른 생각이다. 하지만 『조금 망한 인생』이었다면 이 소설집의 인상이 꽤 달라졌겠지. 그래. 『조금 망한 사랑』이 낫겠다. 수록작 중 「반려빚」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 소설집 속 등장인물은 대체로 돈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다. 산재에 교통사고에 전세사기에 자연재해까지... 그중에서도 「반려빚」이 가장 노골적이다. 가깝고 친밀한 사이에서 벌어지는 금전 문제와 여기에 얽히고설킨 감정 문제를 엮어서 풀어내는 방식이 능청스럽다. 제목부터 '반려'에 '빚'을 더한 조어다. 어울리지.. 2025. 6. 17.
천선란 소설집 『모우어』(문학동네) 표지처럼 따뜻하면서도 몽환적이다.서사보다는 이미지가 강렬하다.작가의 전작과 비교해 난해해서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작가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독성이 가장 떨어진다.그러다 보니 처지는 기분이 들어 후반부에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이미지만 느끼며 스쳐 지나갔다.그래도 보물은 있다.염장이 안드로이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뼈의 기록」이 그런 작품이었다.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보다 더 인간다워 보이는 연출은 흔하긴 해도 가슴을 치는 무언가가 있다.안드로이드가 생전에 친분을 나눴던 장례식장 청소부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염을 치르는 모습을 볼 때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사람은 저마다 살아온 삶을 통해 다른 뼈 모양을 가지게 되며, 인간이 생을 다할 때까지 성장하고 변형된다는 메시지가 뒤통수를 쳤다... 2025. 6. 16.